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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된 이야기의 풍경: 상도동> 2013.12.20-12.30

 

 

신지선은 다수의 개인전과 프로젝트에서 장소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방법론을 도출해왔다. 장소에 대한 리서치를 거쳐 파생된 지점들을 재료 삼아 다양한 형식을 구사하며 다각적인 측면을 다루었다. 이번 전시 또한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상도동’에 거점을 잡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간헐적으로 상도동을 오가며 지리적 감각을 익혔다. 간헐적 이동을 통해 주민들이 자주 오간다는 약수터, 타동네와 연결된 국사봉 터널, 부동산 시세 등 동네의 소위 ‘알짜배기’ 정보를 소문으로 전해 듣는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검색을 통한 자료 수집으로 상도동을 분류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발굴한다. 장소탐방과 발굴, 채집, 조사의 단계를 거치는 프로젝트의 전 과정은 흡사 인류학자의 현지답사를 방불케 한다. 장소성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과정은 다층적인 해석을 요구하기에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현상학적, 지리적 등 학제간의 연구를 호출한다. 다각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장소에 담긴 의미와 장소의 감각에 가깝게 하는 데에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지선의 작업들이 보여주는 다각적인 측면에서의 탐구는 장소에 대한 내밀한 접근을 위해 필연적으로 취한 태도이며 이는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장소를 항해하는 작가주체와 장소의 켜

신지선이 동네의 지리적 감각을 파악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작가는 이 동네의 약수터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후 상도동의 작은 산에 위치한 약수터를 찾아 떠난다. 약수터를 가기 위해서는 동네 주민의 설명에 의지해야 하며, 길을 잘못 들었어도 몸의 지리적 감각으로 찾아 가야 하는 장소이다. 산행 중에 흔히 만날 수 있는 약수터이지만, 구글 지도에서는 감지하지 못할뿐더러 가상공간의 방향감각이 안내하는 위치정보로 길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디지털 지도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난 장소를 답사하는 과정은 장소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장소와의 만남을 유도한다. 실제의 장소 속에서 주민들과 부딪히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체화된 지리감각은 낯선 이에게 장소의 ‘문맥’을 경험하게 한다. 동네의 외부인으로서 잠입한 작가는 실제의 장소에서 문맥을 형성하며 실질적 접촉을 수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장소를 경험한 양상은 <사랑하는 자들의 공동체>, <인지적으로 이루어지는-터>, <상응하는 서사적 파편>에 반영된다. 이 작업들은 상도동의 특정 장소를 답사하고 리서치를 통해 각기 다른 형식으로 파생된 것으로, 의미의 순환 고리를 만들며 상도동이라는 장소의 새로운 문맥을 제시해 준다. 일련의 연동된 작업은 장소에 근거를 두면서 동시에 작가가 이동하면서 만들어낸 작가의 주체적인 수행과정으로 얻어진 것이다. 즉, 작가주체는 장소를 답사하면서 경험했던 여러 우연적인 만남이 문맥을 이루듯, 취사선택된 장소에서 기존에 밝혀진바 없던 또 다른 문맥을 작업을 통해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 주체적인 문맥 형성은 상도동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상징적이고 공식화된 장소의 정체성을 재료로 삼는 것이 아닌 동네의 거주자들이 생성하는 장소성에 주목하여 실제적인 경험의 층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상응하는 서사적 파편>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실제적인 장소는 이 장소의 거주자인 주민의 이야기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주민들의 대화에서 발췌해낸 상도동의 이야기는 국가나 관(官)에 의해 호명되는 상도동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들이 기억하는 역사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서 다시 쓰인 ‘진짜 이야기’이다. 신지선이 작가주체로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도 은폐되었던 장소의 겹이며, 이는 주민들의 이야기로 비로소 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한편, 장소의 겹을 드러내기 위해 정치적인 사건을 수집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내러티브를 형성하기도 한다. 상도동에 거주하면서 안방 정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을 신문스크랩으로 콜라주한 작업 <편식하기엔 기형적인>에서는 언론이 만들어낸 상도동의 사회적, 정치적 위치를 드러낸다. 이 콜라주 작업은 매체에 의해 상도동이 김영삼 대통령과 동일시되는 현상을 다루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한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을 상도동에 비유한 언론의 표현을 부각하여 보여준다. 매체가 생산해낸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동네의 정체란 권력의 노쇠함과 함께 또는 세대의 교체와 함께 잊혀간다는 것을 장소를 빌려서 역사의 단면을 짚어주고 있다. 동시에 장소의 정치적 활용, 지금의 장소가 재편성된 연유가 권력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역사임을 말하며, 현재에도 이어지는 상도동의 모습이 기형적으로 생겨난 터 위에 쌓아올린 삶의 형식임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장소를 이동하는 물리적 한계가 없는 현재에는 여행자, 관광객의 위치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신지선의 작가적 태도에서도 장소를 이동하는 여행자로서의 개인이 중첩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과도 맞물려 취해진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시 여행자로서의 작가는 ‘이동한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한 태도를 보일 뿐, 완전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장소를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장소를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문맥이 장소의 축적된 겹을 밝히는 방식으로 장소성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국가 혹은 통계에 의해 계열화되고 수치화되는 것에 반하여 개개인이 거주하는 방식에 의해 생성되는 문화, 그 속에서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공동체에 집중한다. 작가는 전시제목 뒤에 콜론을 붙이고 상도동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마치 도돌이표처럼 장소성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의 지속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자본주의로 인해 장소의 특성들이 동질화되고 점차 평평해지는 가운데, 지속해서 장소를 이동하면서 장소가 가진 켜를 들추는 것은 장소의 감각을 회복하는 행위이며, 파국을 맞이하는 공동의 삶에 대한 노스탤지어일지도 모른다.

 

-노해나(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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