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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아카이브, 그리고 ‘먼저 온 미래’로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I see people;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around.

 

마가복음 8장의 한 구절이다. 예수가 벳세다의 눈먼 사람을 고치는 이야기로 구성되는 이 구절(8:22-26)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는 한 사람의 경험담이 그려진다. 치유를 받은 눈먼 사람의 시야에 처음 보인 것은 사람들이었으나, 더 정확하게는 나무가 걸어다니는 것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그 후 거듭된 치유를 통해 그의 시력은 회복되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눈먼 사람에게 단 한번에 사람이 (나무가 아닌) 사람으로 보였더라면, 그가 사람들이 “나무가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던 과정을 겪지 못했더라면, 당연시되어 온 기존 인식의 틈(in between)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신지선은 《눈의 소리 Sound of Eyes》(세마창고, 2019)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이야기를, ‘눈’의 역사에 반추하여 그간 수집, 기록하고 정리했던 아카이브를 근저로 재가공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 역시 기존 작업 방식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관찰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그 귀결점에서는 상상적 시도가 가미되는 형식을 취한다.1 작가 개인의 관찰에서 시작한 탐사가 장소, 환경, 그리고 문화, 역사와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며, 그러한 것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구축된 토대 위에 서 있는 우리를 확장된 해석이 가능한 출구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지선의 작업 방식은 구체적인 장소에서 컬렉팅한 이야기를 선택, 채록, 관찰, 정리, 분석, 질문, (재)해석하는 것을 기본 프레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작가는 사전 리서치의 일환으로 출간한 “미래를 보는 미아리고개”(2015)2  를 통해 이번 전시의 개념을 형성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물인 《눈의 소리 Sound of Eyes》는 서울 미아리고개 주변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맹인 역학사의 삶과 맹인독경에 관해 축적해 온 사료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시킨 전시이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전시장에서 처음 대면하는 우주 형상의 그림 <벌어진 8각의 지팡이>와 이들을 마주하는 드로잉들은 작가가 관련 도큐멘테이션을 모두 소화한 뒤 자신의 필터와 프레임으로 걸러 만든, 다소 상상적이지만 추측가능할 법한 세계의 현현처럼 보인다. 8가지의 점괘를 만들어내는 산통은 미래를 점칠 때 사용되는 오브제로, 현세와 염원하는 세계 사이에 위치한 매개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산통이 열리면서 물리/정신적 차원의 경계가 사라져 융합하는 과정을 상상의 드로잉으로 환원한 것이다.

 

아울러, 살펴 본 평면 작업의 레퍼런스를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 작업이 같은 공간에 함께 전시된다. 현재에 서서 미아리 점성촌의 역사를 추적하여 맹인 역학사들의 삶과 문화를 반추해 본 <미래를 보는 사람들>과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눈의 역사를 접근한 <눈의 시간>이 그것이다. <눈의 시간>에서는 서구의 역사에서 채집한 다양한 눈의 도상과 이미지들이 반복 재생된다. 본다는 것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고대 그리스인의 눈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태양, 정의, 성상, 주체, 욕망, 죽음, 상상, 과학, 기술, 기호 등으로 해석되며 존재해 온 눈의 역사를 환기시키는데, 이는 시선(eye)과 응시(gaze)의 구조 속에서 주체와 타자의 관계로 설정되어 왔던 눈의 실재 모습을 재확인하게 한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에 다다르면, 사운드를 동반한 큰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 작업을 만난다. 이 작품은 ‘영(靈)으로 세상을 보는 맹인 역학사들이 무엇으로 영(靈)을 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되었다. 그들은 ‘봄’이라는 물리적 행동에서 배제된 내면의 눈으로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선 세계를 구축한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 세계는 시각과 청각, 주체와 객체, 서양과 동양, 성경과 독경, 과거와 미래, 실체와 초현실의 중간 어디 즈음 위치할 것 같다. 이와 같은 상상을 동반한 추측과 도큐멘테이션, 개인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 여러 레퍼런스를 통해 수집한 시각물 등이 상호 침투하여 <눈의 소리>에서 가시화된다. 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자들의 시간과 역사를 통해 새롭게 돌아보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모든 보이는 것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아울러 보여질 수 없었던 개인/사회적, 또는 역사와 문화의 내적 맥락들이 얽혀 있다. 신지선의 ‘눈’이 향하는 곳은 바로 그 표피적인 눈감음 속에 침잠해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의 ‘소리’를 통해 소환해보는 지점에 있다. 그 ‘눈의 소리’가 공명하는 울림의 편차들은 작가가 정리한 아카이브와 레퍼런스의 읽기를 통해 다양한 층위로 쌓일 것이다. 이 작업은 우리에게 점성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영(靈)으로 세상을 보는 맹인 역학사들의 시선을 마주하게 할 것이며,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에 자리한 맹인독경을 통해서는 한국의 개화기와 근대화, 지금의 시대에 내장된 의미론적 구성요소를 과거, 현재, 전-미래(future anterior)의 타임라인 안에서 상상해보고 유연하게 조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보고 지각하는 현재 상태의 구심점을 축으로 파생되는 ‘틈’에 위치한 신지선의 작업은 보는 이에게 ‘먼저 온 미래’로 건너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 가능성이 가진 감응력이 이루어지는 틈으로 다시 우리를 위치시킨다. 눈을 감고 이 순환의 구조를 따라 맴돌 때 새롭게 관찰되는 것과 더불어 이미 본 적 있는 망막의 기억으로부터 누락된 편린들의 만남과 이별이 교차, 반복하는 이 여정을 통해 우리들이 가진 감각의 확장을 모색해보며,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이 페이드 인아웃(fade in/out)을 반복하는 스크린 위에 혹은 그 경계선 상에서 구현되길 기대한다.

 

이설희(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신지선은 2009년 원서동, 2013년 상도동을 다룬 개인전에서 일상적인 장소와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법론을 도출하고, 이를 예술적 개입을 통해 재맥락화 했다. 일례로 《원서동》(2009)은 인사미술공간이 위치한 원서동의 지역, 건축, 역사적 연구를 통해 근대화의 지역발전계획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온 원서동 주거문화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산출한 후, 원서동 주민들의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에 관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시각화한 프로젝트였다.

 

2 신지선이 역학사 심남용, 박동금, 이수남, 윤병관 등과 진행한 인터뷰 및 역사적 사료, 기록물로 구성되는 이 책은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점성촌의 유래, 점술과 독경의 역사 등으로 확장되어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신지선, “미래를 보는 미아리고개”, 성북문화재단, 스페이스 오뉴월,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2015

3 맹인들이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 신앙 의례로,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맹승이 단체로 참가해 국행 기우제 등을 지낸 전통이 내려온 것이다. 세종대왕 재위 시절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독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러한 맹인독경은 1970년대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였으나, 2017년 1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승인되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 서울맹인독경” (2019. 10. 1. 접속)

The Archive of History and Culture, and to the Future that Comes First

 

“I see people;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around.”

 

This is one of the biblical verses from the Gospel of Mark. The verses (8:22-26) tell a story in which Jesus gives sight to a blind man in Bethsaida and describe the individual who regains his sight through a spiritual experience. People (or, more accurately, people who look like trees walking around) are the first to be seen by the blind man. After several healing sessions, he has his sight restored completely and is able to see everything palpably. If the blind man could have recognized people as soon as he opened his eyes or if he did not have to go through a process in which people looked like walking trees, would he have been able to discover some sort of gap in pre-existing perceptions?

 

Jinsun Shin’s Sound of Eyes (SeMA Storage, 2019) features reprocessed works pertaining to future stories told by blind people and are anchored in materials that have been collected and documented thus far. Initiated by an individual’s observation like in other works, this exhibition employs a mode in which an imaginary attempt is made at the end of the event.1 The exploration triggered by her observation is concerned with a broad spectrum of places and environments as well as culture and history, leading us who stand on a complementary forged foundation to the exit of expanded interpretations. The elemental frames of Shin’s works include selecting, recording, observing, arranging, analyzing, questioning, and/or (re)interpreting tales collected in a specific place.

 

The artist has molded the concept of the exhibition and explored its possibilities through Miari Gogae Predicting the Future (2015)2, a book she published as part of her preparatory research. It resulted in Sound of Eyes, an exhibition featuring the lives of blind fortune tellers who have been living near Miari Gogae, a ridge in Seoul, and historical materials on blind people’s chanting sutras.3 A Cracked Octagonal Stick featuring a cosmic form and drawings facing it are displayed in the venue which has been divided into two spaces. They seem to be a manifestation of a somewhat imaginary yet predictable world which the artist created after coming to understand relevant documents and filtering them out. Santong (算筒), a case used to hold bamboo fortune telling slips, is a medium that is located between this world and one of wishes. The artist represents the process of fusing the physical into the spiritual in her imaginary drawings when the santong opens.

 

Archival works that can be references to the two-dimensional pieces already reviewed are on show together in the same space. They include Blind People Who Can See the Future which ruminates on the life and culture of blind fortune tellers, seeking the history of the fortune telling town of Miari from a present point of view, and Time of Eyes which approaches the history of eyes in a macroscopic dimension. The icons and images of diverse eyes gathered from Western history are shown repetitively in Time of Eyes. This work brings to mind the concept of eyes retained by the ancient Greeks who lent absolute significance to the act of seeing as well as the history of eyes that have been interpreted as the sun, justice, an icon, a subject, desire, imagination, science, technology, and a sign. It serves as an opportunity to reconfirm the reality behind eyes that exist in a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ther in the structures of an eye and a gaze.

 

On show in the last space of the exhibition is a video being played on a huge screen accompanied by sound. This work begins with the question “With what do blind fortune tellers see the world?” They forge a world that bisects the way in which objects are perceived and understood through the use of “internal eyes”, excluding the physical act of “seeing”.This world which is hard to explain rationally is located somewhere between sight and hearing, a subject and an object, the East and the West, the Bible and sutra, past and future, and reality and surreality. Assumptions inspired by imagination, documentation, records on individuals, stories, and visible things collected through other references are interpenetrated and visualized in Sound of Eyes. This is nothing less than an attempt to look back on the world of the blind through the history and time of those who are able to see.

 

The inner individual, social, historical or cultural contexts that are invisible or could not be shown are tangled behind the visible. What Shin’s eyes see is the point where the invisible is brought to mind by imaginary “sound." The deviation of resonances echoing to “sound of eyes” will be stacked in multipronged layers through the reading of archives and references. This work will enable us to face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fortunetelling town and the perspective of bland fortunetellers who see the world through their spirits. Through the blind fortuneteller’s sutras that are a departure point of every journey, the time of Korea’s enlightenment and its modernization, and semantic components in this era can be imagined and assembled flexibly in the timeline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nterior.

 

Shin’s work located in the “interstice” deriving from the present state we see and perceive provides viewers with the possibility to get across the “future that comes first” and relocates us in the interstice the possibility has. Her work is an exploration expanding our senses through the journey we repetitively meet and part from through shards of the retinas’ memories and newly observed things when hovering in the fabric of this cycle. We look forward to another possibility to be realized on the screen where fade-in or fade-out recurs or on its border.

 

 

By Lee Seol-hui (Curator of the Seoul Museum of Art)

1 In her solo shows that tackled Wonseo-dong in 2013 and Sangdo-dong in 2013, Jinsun Shin extracted a variety of methodologies and recontextualized them through her artistic involvement based on everyday places and spaces. For instance, Wonseo-dong (2009) is a visual project in which objective data on residential culture in Wonseo-dong where Insa Art Space is located was extracted through its regional, architectural, and historical studies and in which the artist’s artistic imagination is added to its residents’ private memories and public history. Wonseo-dong has continued to change amid local development projects for modernization.

2 This book comprised of interviews with astrologists, Shim Nam-yong, Park Dong-geum, Lee Su-nam, and Yoon Byung-kwan begins with an individual’s story and expands to the origin of a fortune telling town in Miari and the history of the art of divination and sutra chanting.

Jinsun Shin, Miari Gogae Predicting the Future, Seongbuk Cultural Foundation, Space Onewwal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e and City, 2015.

3 This is a traditional religious ritual through which blind fortune tellers pray for good luck or the treatment of diseases, reciting sutras like Okchugyeong. Pervasive all over the country, this ritual is presently being carried out by a few taesa (太師, one who engages in chanting sutras) primarily in Seoul. It is a legacy from the tradition of rain rituals that were carried out by a group of blind people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Visually impaired individuals were taught using reciting sutras as part of the vocational curriculum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Great. This type of ritual was considered superstition in the 1970s but was designated as Seou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48 in January 2017. Seou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48, Sutra Chanting by Blind Peopl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s national cultural heritage po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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